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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백오십 원을 받고 칠백 원을 돌려주는 계산법”
기사입력 2004-02-12 오후 12:12:00 | 최종수정 -

집을 나서니 눈부신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드높아진 하늘, 고슬고슬한 바람 끝이 상쾌하기 짝이 없다. 책과 노트, 도시락이 든 가방의 듬직한 무게가 왼쪽 어깨에 느껴진다. 선원에 공부하러 가는 길, 알 수 없는 기대로 가득 차 있다.

마을버스가 학교 앞 모퉁이를 돌아 아파트 사잇길을 천천히 지나쳐 정확히 정류장에 멈춘다. 버스에 오르니 서너 사람의 승객이 무심하면서도 평화로운 시선을 건넨다. 빈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 창 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가로수에 달린 노란 은행 알을 세어보기도 하고 어린아이와 손잡고 길을 걷는 젊은 여인의 행복한 표정을 훔쳐보기도 한다.
두어 정류장이나 지났을까. 할머니 한분이 오천 원짜리 지폐를 손에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올랐다. 요금 함에 지폐를 넣으려고 하자 기사가 큰소리로 외친다.

“할머니, 천원도 아니고 오천 원을 내시면 거슬러 드리지 못해요.”
할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어쩌지 잔돈이 없는데? 이 근방에는 잔돈을 구할 데도 업더구먼.…” 하신다. 아파트 사잇길을 빠져나온 마을버스는 양재대로를 달리고 있다. 할머니는 버스 안 승객들에게 오천 원을 잔돈으로 바꿔 줄 수 있는지 간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모두들 고개를 흔든다. 내 지감 속에도 그럴만한 돈은 없다. 대신 잔돈은 있었다. 사백오십 원을 챙겨서 할머니께 드렸다. 사백오십 원에 불과한 적은 액수의 돈에 할머니는 지나치게 고마워하신다.
“세상에 고마버서, 어디 사시니 껴?”
그리고 보따리를 뒤지더니 야쿠르트 한 병을 내주신다. 그러시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버스에서 내리며 잘 먹겠다고 인사를 드리니 오히려 고맙다고 하신다.
칠백 원짜리 야쿠르트를 손에 들고 육교를 건너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사백오십 원을 받고 칠백 원을 돌려주는 할머니의 계산법처럼 내 할머니도 평생을 그렇게 사셨는데…
“그 댁은 어데 사는 댁이니 껴?”
낯선 객에게 온화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걸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불교대학에서 오늘 공부를 마쳤다. 모두가 마음공부이다. 청정무구한 사원의 기운이 내게도 조금쯤 옮아 온 것 같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갈 수 있겠다.
신발장에서 구두를 찾아 신으려는데 문득 이상하다. 내 구두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구두 모양과 바닥에 새겨진 희미한 상표를 보아도 분명 내 것인데 왠지 낯설다. 갑자기 막막해졌다.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모든 것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라도 한 냥 두려워 졌다. 구두를 들고 다시 확인해 보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삼년 째, 한 여름만 빼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신던 구두이다. 사람들이 빠져 나갈 때까지 기다려 보았다. 텅 빈 신발장에는 낯설어진 내 구두만이 외롭게 남아 있다. 비로소 내 구두라는 확신을 가지고 발 앞에 가지런히 놓고 신어 본다. 오래 동안 살을 맞대고 부대끼던 가죽의 촉감이 부드럽고 친숙하게 발을 감싸고돈다.

나는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였다.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 타인처럼 여겨지는 생소함에 서러워지려고 하였다. 마을버스를 타고서도 늘 보던 풍경들이 어느 순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싶어진 것이다. 그리곤 생각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간절히 바랐다. 구두와 옷과 핸드백처럼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보이지 않는 다른 것들이 낯설어 졌으면 좋겠다고. 속진에 때 묻은 나의 얼굴이 타인처럼 여겨진다면 서러울 것도 눈물이 흐를 일도 없을 것이다.
사백오십 원을 받고 칠백 원을 주는 계산법에 익숙해지려면 이 모든 것들이 낯설어져야만 할 것이다.
기사제공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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