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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갈마와 조선의 승려 장인들
기사입력 2022-05-10 오후 4:37:00 | 최종수정 2022-05-10 16:37

최초의 불상은 비수갈마(毘首갈摩)의 손끝에서 나왔다.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에 올라가 대중에게 설법했을 때 일이다. 한동안 부처님을 못 뵈어 몹시 아쉬웠던 우전왕(優塡王)이 대신 불상을 만들어 모셔두고자 했다.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던 어느 날 문득 한 천인(天人)이 나타나서는 하루 만에 향나무로 높이 7척의 불좌상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너무 잘 되어 왕은 흡족했다. 그 천인이 바로 비수갈마로, 도리천을 다스리는 제석천이 지상의 사람들을 위해 보낸 것이다. 얼마 뒤 지상으로 다시 내려온 석가모니가 이를 보곤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며, 우전왕에게 불상을 조성하면 어떤 공덕이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석가모니가 열반하자 사람들은 석가모니 대하듯 이 상을 경배했고, 전단서상( 檀瑞像, 향나무로 만든 상서로운 불상), 혹은 우전왕상이라고 불렀다(『묘법연화경』, 『증일아함경』, 『불설대승조상공덕경』).

이 상이 실제로 전하지는 않았겠으나 훗날 불교 예술인에게 비수갈마와 그가 만든 전단서상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정신적 스승이요 규범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18세기 불교 예술계에 이런 관념이 팽배했다. 1730년 공주 갑사 대웅전 영산회상도의 발원문에 “부처님을 그리는 사람은 모름지기 비수천인(毘首天人)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나와 작품에 임했던 그들의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 있다. 1742년 영산회상도의 화기(화記)에 그림을 그린 이들을 가리켜 ‘비수회(毘首會)’라고 칭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불상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1719년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 봉안의 발원문에 “불상의 용모가 전단서상처럼 빼어나다.”라고 한 것이나, 1772년 장흥 보림사 천왕문의 사천왕상 공덕기에 조각가들을 가리켜 ‘비수갈마사(毘首갈磨師)’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 중 한 사람인 추사 김정희(金正喜)도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을 보고는 “도리천에서 신장(神匠)을 보내준 듯이 그 옛날 전단서상에 방불하구나.”라는 찬탄을 상량문에 적었다.

기림사와 해인사의 비로자나불상은 오늘날 조선 후기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니 추사의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조선 시대 불화에는 불국토의 장엄한 광경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된다. 불보살의 인자한 상호, 설법의 한 말씀 한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하며 듣는 대중의 표정 등 터럭 한 올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한 솜씨 등 이들의 기예는 가히 신기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한 화승이 불화를 그리기에 앞서 법당문을 닫아걸고는 내가 완성하고 나올 때까지 절대 안을 엿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하지만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너무나 궁금했던 화주가 손가락으로 창호를 뚫고 살짝 엿보니 한 마리 파랑새가 붓을 물고 왔다 갔다 하며 그리고 있지 않은가. 파랑새는 누가 엿보는 걸 알고는 붓을 버리고 날아가 버렸다. 비슷한 내용이 여러 절에 전하는 전설인데, 조선의 불교 미술인들이 보여준 신묘한 솜씨와 예술혼에 대한 존경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수갈마의 후예를 조선에서는 금어(金魚), 화승(畵僧), 승장(僧匠) 등으로 불렀다.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하는 일도 많아서, 지금까지 전하는 천여 점의 불화를 비롯해 불상과 석탑 그리고 전각 등의 조성을 모두 이들이 담당했다. 스님이자 예술인인 이들은 출가한 뒤 일정한 강습과 실기를 통해 기예를 익혔고, 한 스승 아래 여러 제자가 모여 작업하면서 사찰이나 지역에 따른 유파(流派)를 형성하며 활동했다.

이들의 활동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1818년 11월 나가사키 항구에 스님 17명이 탄 배 한 척이 들어왔다. 경북 경주에서 해남 대흥사로 가다가 동래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해온 배였다. 배에는 서울, 영남, 호남에서 온 승장 44명이 기림사에 모여 만든 옥석 천불상이 실려 있었다. 일본인들이 욕심을 내 천불상을 자기 나라에 봉안하려 했으나, 그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본래 인연처로 돌려보내라고 타일렀다. 그리하여 천불상은 이듬해 8월 대흥사로 무사히 돌아가 봉안되었으니, 바로 천불전의 천불상이다. 그때의 이야기가 우키다 잇케이(浮田一蕙)라는 일본의 저명한 화가가 그린 「조선표객도(朝鮮漂客圖)」에 전한다. 화면 한쪽에 스님이 불상과 불단을 조성하는 장면은 조선의 승장이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일본 절의 법당을 장엄하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불상이나 불화를 예불할 수 있는 건 이를 애써 만들고 봉안하는 수고를 도맡아준 승장들의 노고가 있었던 덕분이다. 조선의 승장들이야말로 진정한 비수갈마라고 인정받아야 마땅한 것 같다.

글 : 신대현 교수(능인대학원대학교)

추사 김정희가 비사갈마가 만든 듯 하다고 감탄했던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좌상

대흥사 천불전 천불상 : 일본 나가사키까지 표류되었다가 원 봉안처로 돌아온 천불상

<조선표객도> : 1818년에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할 천불상이 일본에 표류되었을 때 일화가 그려진 그림

 

기사제공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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