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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이야기
기사입력 2021-12-31 오전 10:54:00 | 최종수정 2021-12-31 10:54

대승불교의 이상(理想)을 잘 나타내주는 개념은 ‘보살(善舊, Bodhisattva)’이다. 보디(bodhi)는 깨닫다(budh)에서 파생된 말로 깨달음, 지혜라는 뜻을 지니며, 사트바(sattva)는 존재, 즉 중생, 유정을 뜻하는 말이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신앙의 목표를 아라한에서 보살로 옮긴 것이다.

과거 초기 불교에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그 이후, 100여년 후 부파불교가 흥기하여 교단은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 두 부파로 갈라졌다. 그리고 이 두 부파는 더 많은 부파로 분파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로 이어졌다. 그러나 교단이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이론들을 전개하면서 수많은 논서가 편찬되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 교리는 승단만의 독점이 되었고 점차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부파불교에서는 보살이란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이 특별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지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범부중생들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경지라고 여겼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보살이라는 이상향을 보편화해서 누구나 도달할 수 있고 완성할 수 있는 경지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보살이란 개념은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근본적 차이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금강경』에서는 보살마하살이라 하여 보살과 구별되는 개념을 보여준다. 이는 보살이란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뜻인데 부파불교에서 성문, 연각이라는 소승불교의 개념과 중복되어 혼란을 주거나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의 차별성을 주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보살의 많은 계위 중 10지 이상의 보살을 나타내기 위해 마하살이란 단어를 붙였다. 이 중 ‘마하’는 ‘크다, 많다, 승(勝: 뛰어남)’이란 뜻이고 ‘보살마하살’은 ‘보살 가운데 큰 보살’이라는 뜻이다.

보살은 일체의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는 자비를 원력으로 중생계에 내려와 중생들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특히 『금강경』에서는 보살마하살은 생사의 세계에서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이타행(利他行)을 강조하고 실천주의적 불교를 제창하고 있다. 이는 나의 깨달음을 타인의 깨달음으로 확장시켜 회향하고자 하는 의미를 피력한다.

그러나 이는 일체제법의 공관으로, 제도하는 자와 제도 받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 무아의 사상을 담고 있는 『금강경』 측면에서 보면 보살의 ‘자리이타’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이는 설일체유부가 주장한 소승의 사상에 ‘我空法有’(인간은 오온의 일시적인 화합에 지나지 않고 불변하는 자아라는 실체가 없지만, 모든 현상은 변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는 뜻)의 주장을 바로잡기 위한 대승불교운동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사명과 또한 대승불교운동은 부처님 당시의 불교로 돌아가자는 대의 때문에 무아라는 초기불교의 개념은 대승불교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금강경』에서는 아상(atman-samjna) ・인상(pudgala-saipjna)・중생상(sattva-sarpjna)・수자상(jiva-sarnjna),이 四相의 부정으로 보살(Bodhisattva) 이라는 ‘대승의 종지’를 설하고 있다. 즉, 금강경은 ‘무상(無相)’을 설함으로써 초기불교의 무아관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바로 이 무상의 실천은 초기불교의 무아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상의 실천은 ‘반야의 지혜’를 현실에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금강경』에서 四相의 부정은 당대의 인도 모든 정통파와 비 정통파의 사견을 타파하고 회통한 새로운 사상인 대승보살상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은 대승운동의 일환으로서 ‘반야바라밀’을 최초로 명쾌하게 설함과 동시에 제법이 공함을 깨닫는 이가 ‘보살’이며 모든 중생의 깨달음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인 것이다.

글 : 도오스님

기사제공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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