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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연재 4회>
기사입력 2021-10-13 오후 4:59:00 | 최종수정 2021-10-13 16:59

몸을 벗는 것은 또 다른 자유다. 억압된 이승과의 탯줄을 잘라내는 일. 내 의식은 과감히 몸을 버리고 그 자유를 택했다. 두 눈을 꼭 감고 죽은 듯 누워있는 몸, 허둥대는 의료진들, 안절부절못하며 수술실 앞을 서성이는 남편의 고통스러운 모습,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내 의식은 가볍게 구름 속을 날았다. 아이에 대한 걱정도,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는 가벼워진 몸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한 마리 나비였다.

발아래 강이 보였다. 검고 푸른 강물 위에 배 한 척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 나는 그 배를 안다. 아버지 가시고 사십구재가 끝나던 날, 영가를 극락정토로 건네준다는 반야용선에 아버지 위패를 모셨다. 그리고 훨훨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배의 뒤를 밀어줬다. 아버지는 짙은 안개 속으로 용머리를 돌리는 배 난간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잘 있거라.”

지혜의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삼킨 안개가 그 날도 강 가득 꽃처럼 피어올랐다. 난 그 강 앞에 서서 아버질 떠올렸다. “아버지 나도 배를 타고 이 강을 건널까요? 아버지가 계신 세계로 들어갈까요?”

그때, 나를 돌려세운 건 소리, 소리였다. 평생 온몸으로 자식을 지켜준 아버지 음성이 내 의식을 흔들었다. 아버지 음성은 범종 소리가 되어 머리를, 가슴을, 그리고 내 기억의 문을 마구 두드렸다. 일어나라 내 딸아. 뎅뎅뎅, 뎅뎅뎅….

눈을 떴을 때 누군가의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버지?”

실루엣이 한 발 더 나를 향해 다가서자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는 나를 수술해준 의사였다. 순간 복부와 팔, 몸 곳곳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회복실입니다. 이제야 의식이 돌아왔네요. 기절 후 여섯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럼 나 살았나요?”

입술이 여기저기 부르트고 얼굴이 초췌해진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내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나는 다시 편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죄스럽게도, 그건 너무도 달콤한 잠이었다.

관 뚜껑이 닫힌다. 달빛이 사라지고 한 줌 바람마저 사라지자, 어둠이 이불처럼 전신을 감싸 안는다. 죽음은 어둠이다. 아니 공포다. 다시 이 관 뚜껑이 열리지 않으면 나는… 미간을 모으고 호흡을 조절한다. 천천히 몸의 힘을 빼며 나직이 주문을 건다.

나는 죽었다. 죽었다.

관 뚜껑을 두드리는 해머의 둔탁한 소리가 탕, 탕 고막을 찢는다. 싸르륵, 싸르륵, 얼굴 위로 흙 쏟아지는 소리, 목탁 소리, 스님의 염불 소리….

내 몸은 지금 관과 함께 땅 깊숙이 매장되고 있다. 나는 이제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살은 흙으로, 수분은 물로, 열기는 불로, 행동의 에너지는 바람으로….

인연 따라 하나로 응집돼 나를 이루었던 것들이 다시 인연에 맞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의식만이 무거운 업의 사슬에 묶여 사라지는 제 모습을 본다.

글 : 안연화지

기사제공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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