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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현교수의 불교미술- 차와 불공
기사입력 2021-07-15 오후 4:26:00 | 최종수정 2021-07-15 16:26

요즘은 갖가지 음료가 차고 넘친다. 생수는 물론, 탄산음료, 이온음료, 곡류음료 거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마시는 커피까지.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녹차 같은 전통 음료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사실 옛날에는 차(茶)야말로 가장 귀하고 값비싼 고급 음료였다. 음다(飮茶)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이자 고급 취향으로, 아주 귀한 사람이 아니면 ‘차 한 잔 대접’ 받기 어려웠다. 그런데 차는 언제 처음 마시게 되었고, 언제부터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았을까?

“남방 파촉 지방에서 향기 나는 차를 주 무왕(?~기원전 1043)에게 바쳤다.”(4세기 『화양국지』)라는 기록을 보면, 아무리 늦어도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는 차가 재배된 걸 알 수 있다. 이때까지 차는 왕이나 귀족이나 마시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이후 진(秦)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부터 중국 전역에 보급되어, 일반 서민들도 음다(飮茶)를 즐긴 지 어언 1,800년이나 되었다. 음다 풍속은 7세기 당나라 때부터 12세기 송나라에 이르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육우(陸羽)가 지금도 차에 관한 최고 저술로 꼽는 『다경(茶經)』을 지었고,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채양(蔡襄)이, “차색(茶色)을 잘 감별함은 곧 관상가가 사람의 기색(氣色)을 살피는 일과 같다.”라고 차를 인격화한 것도 그 같은 풍속을 반영한다.

우리나라에 차는 가야 시대에 인도에서 전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음은 『삼국사기』에 “차는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부터 있었다.”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또 『삼국유사』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서 모두 차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음이 나온다.

사복(蛇福)은 신라의 기인(奇人)이었다. 말도 못 하고 몸도 불편해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겼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나, 그가 죽고 나서야 실은 전생에 원효(617~686) 스님의 도반이었던 고승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삼국유사』). 또 다른 기록에는 그가 평소 늘 원효에게 차를 끓여주었던 성인(聖人)이었다고도 나온다(『동국이상국집』). 말하자면 사복은 기록에 보이는 신라 최초의 다인인 셈이다. 원효가 높은 공덕을 쌓은 데는 사복의 차 공양이 뒷받침되었다고 봐야 하겠다.

여기에 더해, 신문왕(재위 681~692)의 아들 보천(寶川)·효명(孝明) 두 왕자가 오대산에서 수도할 때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했음을 보면(『삼국유사』), 차는 부처님에게 올리는 불공(佛供)의 하나로서, 또 수행자가 행하는 수행의 방편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신라의 저명한 다인(茶人) 충담(忠談) 스님은 765년 3월 3일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불’에게 차를 공양하고 내려오는 길에 경덕왕을 만났다. 즉석에서 차를 끓여주어 왕의 입맛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감탄한 왕에게 이번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는 내용을 담은 향가 <안민가>를 지어주었다.

차를 매개로 하여 왕의 도리를 깨우쳐준 것이다. 충담 스님을 통해 오묘한 차의 맛에 눈을 뜬 경덕왕은 차 애호가가 되었고, 월명(月明) 스님에게 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월명 스님은 신라 시대 문학 장르인 향가의 고수이기도 했는데, 그가 지은 「제망매가」와 「도솔가」가 탄생한 것도 혹시 그가 즐겨 마신 맑은 차 덕분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신라 사선(四仙)으로 꼽히던 영랑·술랑·안상·남석 등 네 명의 화랑이 강릉 경포대와 한송정 등에서 차를 마실 때 사용한 흔적이 조선 초기까지 전했다고 하고(『신증동국여지승람』), 진감(眞鑑)·무염(無染) 국사 등도 음다를 즐겼다는 걸 보면 주로 상류계층에서 음다(飮茶) 풍습이 유행했던 것 같다. 이후 828년에 당나라에 다녀온 사신이 차 종자를 가져오고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면서부터 차가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조선 후기까지도 초의(草衣, 1786~1866) 선사처럼 수행과 음다를 함께 행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명맥이 불가에 이어졌다. 아쉽게도 요즘 불단에 차를 공양하는 일은 보기 어려워졌지만, 불단 한쪽에 살포시 차 한 잔 올려놓으면 더욱 정성스러운 불공이 되지 않을까.

이열치열, 더운 여름에 찬 것보다 따뜻한 차 한 잔이 훨씬 건강하게 땀을 식혀준다. 경주 석굴암에 가면 본존상 뒤로 문수보살상이 오른손에 찻잔을 쥐고 우아한 모습으로 막 차를 음미하는 모습이 보인다. 차 한 잔이 바로 수행의 원동력이 되고 지혜의 샘일 수 있다. 우리도 여유롭게 차를 음미하면 그 순간만큼은 더위도 잠시 물러나 줄 것만 같다.

글 : 신대현 교수(능인대학원대학교)

82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차를 대량으로 생산한 차밭인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선과 차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던 조선 후기 초의선사 진영(대흥사)찻잔을 들고 있는 석굴암 문수보살상(한석홍 기증 사진)

기사제공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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