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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여의대보주 단청불사 영험담(해운거사) -
기사입력 2021-02-15 오후 2:33:00 | 최종수정 2021-02-15 14:33

원장스님과의 인연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있는 그 해엔 사람들이 모이기라도 하면 온통 금메달 얘기로 소란스럽고 그 열기가 뜨거웠지요. 그러나 그 가을 능인선원 서초법당에는 어둠이 더해 갈 시간이면 선남자 선여인들이 모여 천수경 해설을 공부했고 삼매의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100평 남짓 법당을 채운 학인들은 그 수가 아마도 500여 명를 넘었고, 언제나 빈자리는 없었지요.

혹 내게 용맹정진을 했느냐 묻는다면 초발심 그 자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지광 원장스님의 강해는 마치 아직 거칠고 문명화되지 않은 대지처럼 멀리 짐승들의 땅을 헤치고 흐르는 격한 물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마도 스님 눈에는 우리 학인들이 형광등 불빛 아래 모여서 노도의 물소리에 놀라 조심스레 숨을 쉬어가던 아직은 불법정토 밖 거친 땅을 헤매는 짐승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 스님의 설법 앞에서 혼란스러웠던 적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법계를 해설하실 때면, 스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물질계를 먼저 보게 하시고 이어 그 존재의 논리와 실험적 가치를 정리하신 후 이 논리와 가치를 확장하여 법계를 보게 하셨지요. 최소한 저는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나의 혼란은 ‘이 물질계의 논리가 법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찾은 논리적 위안은 수학의 집합개념을 빌어 ‘우리가 사는 물질계 전체를 하나의 집합으로 정의한다면 이것은 법계라는 대집합의 한 작은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으려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3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무렵 스님의 천수경 해설은 장안의 불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여러 신문, TV 등 언론 매체에서도 회자가 되고 있었지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7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화가 정착되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이 증대되고, 가계소득이 증대하고,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중 불교교화에도 변화가 있었지요. 큰스님들의 법요집들이 발간되어 읽히고, 학인스님들이 도시 불자들을 찾아서 산 절을 떠나 도심 포교당을 개설하기 시작했지요.

서초동 능인선원 법당의 설립과 발전은 아마도 이후 많은 대중 불교교화에 원을 세우신 많은 학인스님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교범이 되었지요.

이렇게 저는 능인선원 불교대학 8기를 수료하였고, 이후 30년 어디를 가든 “나는 불자입니다. 불교가 뭐냐구요? 한 30분 시간 있으신가요?”’하며 이렇게 토론을 즐겨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권선보살로부터 불사를 권유받다.

수년전 선원 간사장 업무를 하셨던 한 보살님과는 법당 안팎에서 수년에 걸쳐 안부의 말을 건네며 지내고 있지요. 3년전 가을, 그 보살님으로부터 법당불사(구룡여의대보주단청불사) 권선을 들었습니다.

몇 달이 지났고 이듬해 정월달 하순 아버님의 기일에 임하여 고향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제사를 마쳤고, 그 날 따라 70년도 더 전에 임종하셨던 막내 숙부님에 대한 기억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조부님 슬하의 4남 1녀의 막내 아드님으로 나셨으나 20대 후반에 채 피우지도 못한 꽃송이로 생을 마감하셨지요. 간추린 기억들은 이러합니다.

30년대 후반, 일정시대의 종말이 멀지 않을 때였습니다. 숙부님께서는 보통학교를 마치셨고 그러나 학병들과 함께 징발되어 아마도 동남아시아 지역 어느 일본군의 전쟁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병을 얻으셨고, 보호소 생활 중 감시를 피하고 신분을 숨기며 도망자처럼 귀국길에 나섰습니다. 이국의 땅에서 배를 타고, 철길을 타는 험한 고난의 길이었지요. 천운으로 다행히 집에 도달했으나 이미 몸속은 중증으로 폐질환이 깊었습니다.

이후 숙부님의 병구완에 나서신 이는 나의 어머님이셨습니다. 당시 어머님께서 3명의 아이를 양육하고 계셨고 집안 가사며 농사일에 이미 여유로운 손이 아니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두 살 손아래인 시동생분의 환난을 보며 애처로움에 당신의 수고로움은 입에 올리지 않으셨겠지요. 다행히 해를 지나며 병세가 회복되고, 숙부님께서는 해방을 맞기 전 대구시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방을 맞고 20대 중 후반의 나이에 이웃 학교 한 여선생님을 만나 혼인을 했습니다. 조부님께서는 대구시 남산동 어디에 신혼집을 마련해 주셨고, 기거하시던 우리집을 떠나 숙부님은 신혼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서너해 동안은 아마도 그 시절 여느 젊은 지식인의 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가늠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지 못했습니다. 숙부님은 전쟁터에서 얻은 질환의 후증으로 부인만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시게 됩니다. 이제 숙부님께서는 혼백이 되시어 우리집으로 다시 돌아오시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숙부님 빈소를 마련하시고 1년 상을 치루었습니다. 당시 혼자가 되신 숙모님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빈소를 찾아 예를 올리시고 눈물을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친정으로 거처를 옮기신 숙모님께서도 오래지 않아 먼 길에 오르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님을 찾아 나선 숙모님의 애처러운 발길’이라는 생각으로 어머님께서는 한 평생을 두고 두분의 그 짧은 생을 애석해하셨습니다.

이리 황망한 일을 당하시어 조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막내 아드님 흔적을 애써 잊으려 하심이었던가요? 후일 편집된 가계 족보에는 당신들의 막내 아드님 생몰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조부님의 호적에는 숙부님의 생몰에 대해서만 두어 줄 기술된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혼인에 대한 흔적은 그곳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혼인신고를 하기도 전 예상치도 못하게 연이어 일어난 재난에 일이 그리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내가 자라 성년에 될 무렵 언젠가부터 어머니께서는 집안 제사가 있는 날이면 한 두어 마디 망자 숙부님을 회상하시었지요. 이것은 아마도 숙부님과 숙모님은 당신들 기일에 제사를 받지 않으시니 이날에 오셔서 흠향하시기를 기도하심이 아니었을런지요...

막내숙부님과 숙모님의 천도기도발원을 세우다

불사 권선 보살님을 다시 만난 것이 지난해 초여름, 불사 입재 기도일 열흘여 전이었지요. 불사 보시와 입재기도 참여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부처님 전에 내가 어떠한 원을 세울 것인가? 불사 입재기도 시간, 일자, 장소 등등.

그날 밤, 어머님께서 생전에 제게 주시던 여러 말씀들을 회상하면서, ‘이번 불사에는 오래전 타계하신 막내 숙부님과 숙모님의 천도기도 원을 세우리라. 이는 내 어머니께서도 정히 원하시었던 바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숙모님의 인적사항에 대해서는 우리 형제 누구도 이를 기억하지 못 했습니다. 숙모님의 함자마저도 그러했습니다. 몇 날을 숙고하다가 일이 이러하니 숙모님께 법명을 헌정한다면 그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봄철의 정갈한 꽃, 흰 목련화를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어머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저는 지장보살님전에 숙부님 그리고 목련화 숙모님, 두 분 망자의 천도발원을 불사의 원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한 일이 법도에 혹여나 누가 되는지는 잘 헤아리지를 못합니다. 다만 숙모님께서 먼저 가신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 길을 따라 횐 목련화처럼 땅에 누우셨으니 그 사랑과 애처로움을 목련화의 정갈함을 빌어 그 연모의 정을 기리고자 함이었습니다. 권선보살님에게 제 뜻을 전달하였고, 그런 후 마치 어릴 적 숙제를 해 마친 듯 마음이 가벼웠습니다.(다음호에 계속됩니다)

글: 과천 거주하는 처사 김 해운 배. (이 글에서 권선보살은 이청운지 불사본부장임을 밝힙니다.)

기사제공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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