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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만나-고대불자회 OB모임고려대학교 불교학생회, 격동의 시대에 자유를 외치다!
기사입력 2012-10-05 오후 3:27:00 | 최종수정 2012-10-05 15:27





<위)불자회 연합의료 봉사활동 모습 아래)고려대학교 인근 사찰에서 법회 후 기념사진>

아픔은 추억 뒤의 그림자라 했다. 1960년 월정사 수련대회가 그렇다. 당시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물로 인해 10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월정사 연화탑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고, 동아리회원들은 지금도 해마다 7월 첫째 주면 월정사에 가서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낸다.
고려대학교 불교 동아리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970년대. 이 동아리들이 지금은 여러 이름으로 나뉘어져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당시 고대 불교 동아리는 각 학번 당 50명 정도 되었고 전체 인원이 300~400명에 이르렀다. 활동 내용도 현재 불교 동아리들과는 달리 적극적이며 능동적이었다. 불교 공부뿐만 아니라 사회에 관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유신정권 당시 신입생들은 불교 동아리에 가입하면 목탁치고 경전 공부하는 것은 낮에, 밤에는 유신정권 타도를 외치며 사회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장기집권에 의한 빈부격차와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들을 타개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갈망은 점차 타올랐고 이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운동으로 번지곤 했다.
당시 고대 불교 동아리원이었던 75학번 양경년 씨(46, 인사동 茶 판매전문점 明金湯 대표)는 “취직은 쉬웠지만 인간으로서 꿈은 불투명했습니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문제였는데, 취직보다 꿈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었죠”라고 말한다. 잔디밭에 앉아 토론하고 아파하는 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고뇌라는 생각에, 철학적인 생각까지 공유했던 시기가 바로 그 때였다.

도반들과 참불교를 공부하다
물론 현재도 그렇듯이 그 당시에도 대부분 동아리 신입생들이 불교 진리에 관한 공부를 목적으로 가입하진 않았다. 친구나 부모님의 권유 또는 호기심에 불교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단순한 호기심이 불교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해갔다.
도반들과 이야기하며 참 불교를 공부했고 수련대회를 벗 삼으며 세상공부도 접하면서 시야는 넓어졌다. 그 당시 고대 불교 동아리는 여름에는 월정사로, 겨울에는 송광사로 수련대회를 떠났다. “추운 겨울 송광사를 찾았을 때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당시 주지스님이 고대 출신 법흥스님이셨는데 스님께서 따뜻한 차를 주셨어요.” 많은 이들이 입을 모은다. 그 때부터 불교와 마음공부를 해야겠다고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송광사 수련대회가 끝나면 친구들 집을 들르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세상 공부는 물론 친구들과 함께 경전반과 참선반 활동도 하며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요즘 학생들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
아쉬움, 그건 현재 불교 동아리 구성원 활동 규모가 그 때에 비해 줄었다는 부분이다. 모든 대학 동아리들이 최근 봉착한 문제점이다. 다행히, 추억의 무게는 여전하다. “수련대회를 갔다 와서 불자가 되어야겠다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우리가 카르마를 가진 존재들인데 이를 척결하는 방법은 참선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도반들끼리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이야기했고 동아리방에 공개 일기장을 활용해 모두의 생각을 적고 공유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라서 책과 토론을 통해 꿈을 꾸었다. 외국여행도 힘들었던 시절이라 유학은 시험을 통과해 정부에서 보내주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서로가 불교 동아리에서 늘 함께하며, 창의적 생각을 공유하곤 했다.
그들에게 다른 물음을 던졌다. 그 때가 왜 그립습니까? “현재는 인터넷에 의해서 꿈과 개인의 고뇌보다 정보가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생각이 본인 생각이라 착각하고 삽니다.”결국 고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교는 자신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 요즘 학생들은 고뇌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교 동아리에 관심이 없다 는 것이다.
‘나 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종교라 생각했던 시절,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는 과정이 더 중요했던 시기다. 동아리에는 분명 그들이 공유하던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래서 정보화 시대에 살며 자아성찰보다는 정보가 급한 요즘, 눈앞의 꿈보다 인간의 본질적인 꿈을 위해서 고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추억의 무게가 말해주는 또 다른 메시지이다. 인터넷의 단답형이 해결해 줄 수도, 누군가 대신 찾아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글 : 이귀범(능인대학청년부기자) 사진 : 고려대학교 불교학생회

기사제공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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